파란 부채 빨간 부채 - 전래동화 옛날 어느 나무꾼이 나무를 하다가 뜻밖에도 부채 두 개를 주웠습니다. 하나는 파랗고 하나는 빨간 것이었습니다. 나무꾼은 마침 나무를 하느라 땀이 나던 차라 빨간 부채를 펴서 훨훨 얼굴을 부쳤습니다. 그랬더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자기의 코가 뜨끈뜨끈하더니 점점 크고 높아졌습니다. 나무꾼이 놀라 만져 보니 한 주먹이 넘었습니다. '아이구, 이거 큰일났네! 코가 이렇게도 커서야 어디 창피스러워 남의 앞에 나서지도 못하겠는걸! 아이구, 무슨 좋은 수가 없을까? 본디대로 코를 낮추어야 할 텐데 이걸 어쩌면 좋아.' 나무꾼은 거의 울상이 되었습니다. 코만 높아진 것이 아니라 뜨겁고 화끈거려서 도무지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우선 코를 서늘하게 식혀야만 했습니다. '빨간 부채로 부치면 코가 더 커지고 더 뜨거워질 텐데. 에라, 모르겠다. 파란 부채를 부쳐 코부터 식히자.' 나무꾼은 코가 더 커질까봐 걱정이 안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큰마음 먹고 파란 부채로 훨훨 부쳤습니다. 그런데 이게 또 웬일입니까? 그렇게도 높고 화끈거리던 코가 본디대로 낮아지면서 화끈거리지도 않았습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야, 요것 봐라. 그럼, 이 부채들이 요술 부채로구나!' 나무꾼은 다시 시험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먼저 빨간 부채를 펴서 훨훨 부쳐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아까와 마찬가지로 코가 금방 높아지며 또 화끈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시 파란 부채를 펴서 부쳐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도 금방 그 코가 낮아지고 본디대로 되었습니다. 나무꾼은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너무도 기뻐서 그는 나무할 생각도 잊어버리고, 그만 부채 두 개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오자 나무꾼은 자기 부인을 큰소리로 불렀습니다. "여보오, 왜 오늘은 나무를 해오지 않고 벌써 돌아왔소?" "아, 나무가 무엇이오? 내 오늘 정말 보물을 주워서 횡재했소." "아니, 별안간 횡재는 무슨 횡재요?" "임자, 놀라지 말어. 이거야, 이거." 나무꾼은 호주머니에 찔러 둔 부채 두 개를 부인에게 내어 보였습니다. "이것 부채 아니오?" "부채지. 틀림없는 부채지. 그런데 말씀야, 이 부채가 예사 부채와는 다르다 이 말씀이거든." "아이, 당신도! 부채면 부채지 뭐가 다르단 말요?" 부인은 빨간 부채를 펴더니 자기 얼굴을 부치려고 했습니다. "아아, 임자 큰일나고 싶어? 어허, 그 부채 이리 내놓아. 그 부채 부쳤다간 큰일난단 말요." "당신 산에 나무하러 가더니 정신이 이상해졌구려." 남편이 얼른 빨간 부채를 부인에게서 빼앗았습니다. "임자, 내가 이 빨간 부채를 부칠 테니깐 내 코를 좀 보란 말요." "아이, 정말 우스워 죽겠네!" 나무꾼이 부채를 부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남편의 코가 점점 높아졌습니다. "에이구머니, 이게 무슨 일이오? 당신, 당신 코가.... 에이구, 징그러워요. 이 일을 어쩌면 좋아요? 여보, 큰일났어요. 의원을 불러올까요?" "의원? 무슨 놈의 의원을 불러온단 말이오. 내가 의원인데!" 그러고 나서 이번에는 파란 부채를 훨훨 부쳤습니다. 그러자 남편의 코가 본디대로 되었습니다. 그러자 부인은 신기해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여보, 이 요술 부채가 어디서 났소!" "어디서 나긴? 내가 나무하다가 주운 것이지. 산신령이 내게 선사한 것이오. 아, 내가 마음씨 착하고 부지런히 일 잘하니까, 산신령이 감동해서 내게 주신 보물이오." 그러고 나서 혹시 자기 이외의 사람도 그렇게 되나 안되나 하고, 나무꾼은 자기 아내에게도 시험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아내의 코도 그렇게 되었습니다. 두 부부는 정말 보물을 얻었다면서 기뻐했습니다. "여보, 이 부채로 우리 돈을 법시다. 하하, 이젠 나무같은 건 하지 않아도 편안히 살 수 있게 되었소." "돈을 벌다니요? 어떻게 해서요?" "이런 사람 좀 봤나. 임자는 내 하는 대로만 봐요." 며칠이 지났습니다. 마침 그 동네에 사는 부잣집 주인의 환갑날이 되었습니다. 그 환갑 잔치에 그 동네 사람들은 물론이고 이웃 동네 사람들까지도 부잣집으로 왔습니다. 나무꾼은 빨간 부채를 호주머니에 찌른 채 그 부잣집으로 갔습니다. 부잣집으로 가보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술에 취해 너울너울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환갑을 맞은 부자 자신도 땀을 흘리며 그들과 함께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나무꾼은 입 가장자리에 웃음을 띠며 그 부자 가까이로 다가갔습니다. "아이구, 어르신. 얼마나 기쁘시면 땀까지 흘리시며 춤을 다 추십니까?" "아니, 이 사람아. 기쁘다뿐인가? 환갑이란 우리 일생서 제일 기쁜 날이 아닌가?" "어르신, 제가 땀을 말리기 위해서 어르신을 부채로 부쳐 드리겠습니다. 이제 마음놓고 춤을 추세요." "어이, 고마우이!" 나무꾼은 가져갔던 빨간 부채를 꺼내어 춤추는 부자를 따라다니며 부쳐 주었습니다. 그래도 부자는 얼마 동안은 모르고 춤을 추었습니다. 코끝이 뜨끈뜨끈했어도 술을 너무 마시고 춤을 춘 탓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때 춤을 추던 이웃 영감 하나가 부자 영감의 코를 보더니 깜짝 놀랐습니다. "여보게, 큰일났네. 갑자기 자네 코가 왜 그러나? 이 사람들아, 춤 그만 추고 이 영감 코 좀 보게나." 이 소리를 듣자 모두들 춤을 그만두고 멈춰 섰습니다. 그리고 부자 영감의 코를 쳐다보았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부자 영감도 자기 코를 만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코가 큰 주먹만한 것 같았습니다. "술독이 오른 게로군!" "아니, 음식을 잘못 먹은 게 아닐까? 환갑날 잘 먹으려다 오히려 병이 났군 그래." 여기저기서 야단들이었습니다. 이 소동을 틈타서 나무꾼은 몰래 빠져 나와 자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부자 영감은 코가 뜨끈거려 소리소리 질렀습니다. "아이, 코야! 아이, 코야!" 사람들은 별놈의 유명하다는 의원을 불러 온갖 약을 다 써보았습니다. 그러나 코는 낮아지지 않았습니다. 며칠이 지나도 코는 그냥 그대로였습니다. 일이 이렇게 되자 부자 영감은 먼 동네에까지 방을 써 붙였습니다. 그 방에는 자기 콧병을 고쳐 주는 이에겐 자기 살림의 절반을 준다고 했습니다. 이 소문을 들은 나무꾼은 이제 틀림없이 부자가 된다고 생각하며, 파란 부채를 호주머니에다 찌르고는 부잣집엘 다시 찾아갔습니다. "어르신, 콧병이 아직도 안 나으셨군요. 이거 큰일나지 않았습니까?" "여보게, 말 말게. 아마 난 이 병으로 죽나 보네. 방을 사방에다 써붙여 놓았지만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찾아 오지 않으니, 이젠 도리 없이 이 병으로 죽게 되었네." "어르신, 그 병 제가 한번 고쳐 볼까요?" "예끼, 사람. 남은 아파서 죽겠는데 농담하긴가?" "어르신, 농담이 아닙니다." "아, 이 사람아, 의원도 못 고치는 병을 자네가 무슨 수로 고치나?" "틀림없이 고쳐 드릴 테니, 그 방에 써붙인 대로 약속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야 무슨 수로라도 병만 낫게 한다면 여부가 있을라구." "예, 그럼 좋습니다. 여기 누우셔서 눈을 감으십시오." 부자 영감이 나무꾼 앞에 반듯이 드러누웠습니다. 그러자 나무꾼은 파란 부채를 내어 부자 영감의 코를 살랑살랑 부쳐 주었습니다. 그러자 영감의 코가 점점 낮아지더니 본디대로 되었습니다. 이것을 보자 나무꾼은 얼른 부채를 호주머니에 넣어 버렸습니다. "나으리, 이제 코가 화끈거리지 않지요? 이제 병이 다 나으셨습니다. 손으로 코를 한번 만져 보십시오." 영감이 자기 코를 만져 보더니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거울을 들고 자기 코를 뚫어지게 바라보았습니다. 틀림이 없었습니다. 그렇게도 화끈거리던 코가 씻은 듯이 낫고 본디대로 낮아졌습니다. "여보게, 참으로 고맙네. 자네야말로 의원보다 낫네!" "그럼, 나으리 그 살림...." "응, 주다말다. 자네야말로 나를 구한 은인인데, 그까짓 살림이 문제인가?" 이리하여 나무꾼은 부자의 살림 절반을 받아 편안히 살았습니다. 이제는 고된 일을 하지 않고 빈둥빈둥 놀거나 낮잠 자는 것이 일이었습니다. 어느 날 나무꾼이 뜨락 감나무 밑 평상 위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그 옆에서 파란 부채와 빨간 부채가 놓여 있었습니다. 그는 언제나 이 두 부채를 가지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이때 부잣집 고양이가 이 나무꾼 담 위에서 집 안을 두루 살피고 있었습니다. 이 고양이는 얼마 전 나무꾼이 빨간 부채로 주인의 코를 높여 높고는, 파란 부채로 코를 낮추는 비밀을 다 보았습니다. 그리고 재산을 받아 간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고양이는 그런 일이 있은 뒤로, 늘 그 나무꾼집을 드나들면서 그 부채를 어디에다 두나 하고 그것만 살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오늘은 나무꾼이 평상 위에 놓아 두고 낮잠을 자는 것이 아닙니까? 이것을 보자 고양이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옳지 됐다. 나를 사랑해 주던 주인에게 은혜를 갚을 일이 생겼구나. 저 부채를 물고 가야지!' 이렇게 생각한 고양이는 그 두 부채를 입에다 문 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부자 영감 앞으로 갔습니다. 고양이는 이 부채 때문에 주인이 혼이 났다는 것을 알려 주려고 했습니다. 고양이는 우선 빨간 부채를 펼쳐서 자기 코를 부쳐 보았습니다. 그랬다니 고양이의 코가 점점 커졌습니다. 이 광경을 본 부자 영감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놀랐습니다. 그러자 고양이는 다시 파란 부채를 펴서 살래살래 부치니 그 코가 본디대로 낮아졌습니다. 이것을 본 부자 영감은 무릎을 치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고양이의 등을 쓸어 주었습니다. 부자 영감은 자기의 병이 이 부채 때문이었고, 부채의 주인이 그 나무꾼인 것을 그때야 비로소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당장 하인들을 시켜서 그 나무꾼을 잡아오게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부자 영감은 우선 빨간 부채로 나무꾼의 코를 부쳐 주먹만하게 만들고는 관가에 넘겨 버렸습니다. 며칠 뒤에 부자가 나무꾼에게 준 살림을 관가에서 되찾아 주었으며, 나무꾼은 자기가 지은 죄만큼 벌을 받게 되었습니다.